화요 오전 10시 기도회

나는야, 하나님께
발탁된 야곱입니다!

말라기 1장 1-5절

서론: 보이지 않는 잿더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

상쾌한 화요일 오전 10시, 한 주간의 가장 분주한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과의 만남을 선택하신 귀한 성도님들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말라기 시대는, 겉보기에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시대였습니다. 성전이 있었고, 제사도 드려졌으며, 율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잿더미 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100년 전 포로 귀환의 감격은 사라지고, 삶을 짓누르는 경제적 압박과 정치적 무력감, 그리고 응답 없는 기도 속에서 그들의 신앙은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나의 실제 삶’ 사이에 거대한 괴리가 생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습이 2,500년 전만의 이야기일까요? 2025년 9월 2일, 대한민국 김해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도 번듯한 예배당이 있고, 뜨거운 찬양이 있으며, 수많은 신앙 서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버텨야 하나’라는 현실의 무게에 짓눌립니다. 자녀의 미래, 불안정한 직장, 치솟는 물가 앞에서 우리의 믿음은 너무나 작게 느껴집니다. SNS를 열면 화려하게 성공한 사람들의 소식이 넘쳐나고, 끝없는 비교와 경쟁 속에서 우리의 영혼은 자신도 모르게 시들어갑니다.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이 눈에 보이는 잿더미 위에 앉아 있었다면, 우리는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한 잿더미'—불안, 열등감, 영적 무기력이라는—위에 앉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말라기 백성들과 똑같은 질문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 정말 저를 사랑하신다면, 왜 제 삶은 이 모양입니까?”

오늘 이 예배의 자리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명확한 답변을 듣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딛고 있는 투명한 잿더미를 걷어내고, 세상이 감당 못할 그리스도인의 위엄을 회복하는 능력의 시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첫 번째 기둥: “왜 나인가?”에 대한 대답
- 야곱을 향한 주권적 사랑

하나님은 우리의 이 실존적인 질문에 대해, 인간의 논리와 상식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가히 ‘스캔들’과도 같은 사랑의 근원을 드러내십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왜 하필 야곱입니까? 그의 인생 이력서는 ‘사랑받을 자격 없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욕심쟁이, 사기꾼, 거짓말쟁이, 도망자... 그의 삶 어디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자격 없는 나’, ‘볼품없는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서 어떤 가능성이나 선함을 보셨기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근거는 전적으로 하나님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분의 기쁘신 뜻, 그분의 주권적인 선택, 그분의 불가항력적인 은혜가 우리를 사랑하기로 ‘발탁’하신 유일한 이유입니다.

오늘의 삶에 적용하기 1

비교의 감옥에서 탈출하십시오.

이 진리는 우리를 ‘비교’라는 지긋지긋한 감옥에서 해방시킵니다. 우리는 왜 힘듭니까?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의 아파트, 저 사람의 차, 저 사람 자녀의 대학... 그러나 나의 가치가 나의 성취나 소유가 아닌, 나를 선택하신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있음을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기준에 ‘unfollow’를 선언하고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옆집 사람이 무엇을 타든, 동창이 어디에 살든, 그것이 나의 가치를 1%도 훼손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님께 직접 발탁된 야곱이기 때문입니다!

2. 두 번째 기둥: “어떻게 아는가?”에 대한 대답
- 십자가라는 사랑의 확증

그러나 하나님은 이 신비롭고 주권적인 선택을 단지 비밀로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나를 사랑하신다고요? 그 증거를 보여주십시오!”라고 외치는 우리를 위해, 보이지 않는 그 영원한 선택을, 보이는 역사적 사실로, 만질 수 있는 실재적 사건으로 확증하여 보여주셨습니다. 그 영원한 사랑의 증표, 하나님의 심장이 찍힌 '인생 영수증'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장 8절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확증하셨느니라’는 단어에 담긴 폭발적인 의미를 아십니까? 헬라어 원어는 '쉬니스테미'(συνίστημι)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의 ‘demonstrate’와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Demonstrate는 ‘증명하다’라는 뜻과 함께, 공개적으로 무언가를 주장하는 ‘시위하다(데모)’라는 뜻도 가집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우리 귀에 조용히 속삭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역사 한복판, 갈보리 언덕이라는 공개적인 무대 위에서, 온 우주를 관객 삼아 당신의 사랑을 'Demonstration', 즉 공개적으로 '시위'하셨습니다!

무엇을 향한 시위였습니까? 당대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무자비한 권력 앞에서, 인간의 의를 자랑하던 유대교의 위선적인 종교 체계 앞에서, 그리고 전 인류를 옭아매던 죄와 죽음이라는 거대한 권세 앞에서, 하나님은 피 흘리는 아들을 십자가에 높이 드심으로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사랑이다! 이것이 너희의 그 어떤 권세보다 강한 나의 능력이다! 이 사랑이 결국 승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단지 슬픈 희생이 아닙니다. 십자가는 죄와 사망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데모’요, 우리를 향한 사랑의 장엄한 ‘시위’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쉬니스테미’라는 단어가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것입니다. 2천 년 전 그 위대한 사랑의 시위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바로 나의 삶 속에서 ‘여전히, 그리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고 있는 살아있는 사건입니다! 십자가는 빛바랜 흑백 사진이 아니라, 지금도 내 심장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과 승리를 뿜어내는 현재적인 발전소입니다.

오늘의 삶에 적용하기 2

현재 진행형의 사랑을 살아가십시오.

  • 오늘 아침, 외로움과 무가치함이 나를 덮칠 때: 십자가는 “내가 2천 년 전에 너를 사랑했었지”라고 말하는 낡은 연애편지가 아닙니다. 십자가는 바로 지금, “내가 너를 이 순간에도 이만큼 사랑하고 있다!”라고 외치는 현재적인 확성기입니다. 그 음성을 들으십시오!
  • 오늘 오후, 내가 또다시 죄에 넘어지고 낙심될 때: 십자가는 일회용 사면권이 아닙니다. 지금도 흐르는 보혈의 능력으로 나를 씻기시고, “괜찮다, 다시 일어나자. 나의 사랑은 너의 실수보다 크다”라고 말씀하시는 현재적인 은혜의 통로입니다.
  • 오늘 밤, 도무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 앞에서 잠 못 이룰 때: 십자가는 인류 최대의 문제였던 죄와 사망을 이기신 하나님의 능력이, 바로 지금 나의 문제 속에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재적인 증거입니다.

3. 사랑의 수고 vs 무의미한 노동

이 두 기둥 위에 선 사람의 삶은 어떻게 변합니까? 4절의 에돔과 같이 '무의미한 노동'에서, 야곱과 같이 '사랑의 수고'로 변화됩니다.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는 ‘에돔의 노동’은 결국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창세기에서 야곱이 라헬을 사랑했기에 14년의 수고를 며칠처럼 여겼던 것처럼, '사랑의 수고'는 우리에게 기쁨과 감당할 힘을 줍니다.

여러분의 봉사, 헌신, 특별히 매일 반복되는 가정을 돌보는 일이 버겁고 힘드십니까? 그것은 우리 안에 사랑이 고갈되었다는 명백한 신호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럴 때 ‘그저 쉬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경험으로 압니다. 몸을 쉬기 위해 여행을 가고, 잠시 일을 손에서 놓아도, 마음의 쉼이 없으면 그 영적 침체는 쉬는 중에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몸으로도 일하지만, 사실 우리를 진짜 지치게 하는 것은 육체의 노동보다 정신적인 수고, 마음의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곳에서 쉬어도 우리는 결코 회복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진정한 안식처는 어디입니까? 바로 십자가 앞입니다. 해결책은 일을 그만두고 쉬느냐, 계속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을 하든, 잠시 쉬든, 그 모든 순간에 십자가 앞에 나아가 ‘현재 진행형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고 공급받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우리 마음의 중심을 채울 때, 우리의 모든 수고는 기쁨이요 감사가 되고, 우리의 쉼은 진정한 회복과 충전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결론: 나는야, 하나님께 발탁된 야곱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우리가 딛고 있는 불안과 낙심이라는 ‘투명한 잿더미’를 걷어낼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기둥 위에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첫째, “나는 자격 없지만, 하나님께 직접 발탁된 영적인 야곱이다!”

둘째, “그 사랑의 증거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며 우리를 붙드는 ‘현재 진행형의 십자가’이다!”

오늘 예배당 문을 나서며, 이 두 가지 진리를 여러분의 심장에 단단히 새기십시오. 그리고 이번 한 주간, 삶의 현장에서 불안과 낙심이 밀려올 때마다, 이 진리를 실제적인 무기로 사용하십시오.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여러분의 영혼에 선포하십시오.

“나는 하나님께 발탁된 야곱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십자가를 통해, 바로 지금도 나에게 증명되고 있다!”

이 선포가 여러분을 모든 잿더미에서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이 확신이 여러분의 얼굴에서 근심을 걷어내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강과 위엄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현재 진행형 사랑’을 증거하는 움직이는 교회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